작성일 : 25-06-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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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윤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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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들이 한국을 오갈 땐 대부분 연길공항을 거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연길공항마저도 이름 순서에서 한글이 뒤로 밀려났다.





과거에는 '연길'이란 글자가 앞에 있었다.


백두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가이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다면 모든 문제를 가이드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가이드들의 대부분이 바로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어린이경제캠프
지금껏 여러 번 중국에서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취재를 했지만 이들에게 깊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마침 천지가 폭설로 문을 닫았고, 제설이 늦어져 산장에 발길이 묶였다. 시간이 많았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그러자 교과서나 나무위키가 전하지 않는, 그들의 생애사가 드러났다. 그게 퍽 흥미롭다. 물론 순전히 그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객관적으로 검증S&P500지수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거짓말이 개척한 '간도'
이야기의 출발지는 간도다. 19세기 간도는 빈 땅이었다. 청나라는 자신의 조상인 만주족의 발원지로 여겨 이주민 출입을 제한했고, 조선 또한 백성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백성들은 너무나 가난했다. 또 두만강에 면한 함경도 주민들은 지형이 대부분 주식수익률
산이라 농사지을 땅이 없었다.
그때 조선 백성들에 눈에 들어온 것이 두만강 중간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이 섬까지 가는 건 청나라와 조선 관리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하나 둘 거기서 밭농사를 지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더 넓은 만주 땅이 나온다. 그래서 눈치껏 몰래 강을 건너 농사를 지었다. 아침에 강을 건너 만주에쌍용차주가
서 농사를 짓고, 저녁에 돌아오는데 관리가 나와서 "뭐하다 왔냐?"고 하면 저 "'사이 섬(간도間島)'에 갔다 왔다"고 거짓말을 해 풀려났단다.
그래서 섬이 아닌데도 섬 '도'자가 붙은 지역이 탄생하게 됐다. 두만강 건너 땅은 북간도, 압록강 건너 땅은 서간도라 부르게 됐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왔다. 그간 생계가 주2차전지관련주
된 간도 이주의 이유였는데 이젠 독립운동가들도 왔고, 일제에 의한 강제이주도 시행되며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도 사람들이 콩 농사를 지으며 잘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한 지역 사람들도 간도 이주 행렬에 참여했다. 그런데 함경도 사람들이 이미 북간도 땅을 다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서간도로 갔다. 사이 섬에서 농사를 짓고 왔다는 작은 거짓말로 시작된 간도 개척이 광복 직전에는 200만 명의 조선인이 살 정도로 왕성해졌다.
광복 후 200만 명 중 100만 명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간도에 남기로 결심한 이들의 후예가 현 조선족들이다.
"어떻게 보면 남기로 결정한 조상을 원망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때 돌아갔으면 한국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테니까?"
"저희 할아버지 고향이 북한인데요?"
아무튼 이야기를 잇자면, 그 뒤 6.25전쟁이 터졌고, 중국 현대사의 흐름에 조선족들도 같이 휩쓸렸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간첩으로 몰릴까봐 많은 가족들이 족보를 태우기도 했다. 한국에 친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남한 소식 역시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때 국제 정세가 그랬다.



대표적인 조선족 마을인 정암촌의 옛 모습. 지금은 주택개량사업으로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민항기 불시착 사건이 만든 코리안 드림
그러다 한 사건이 터진다. 1983년 중국민항기 불시착 사건(296편 납치사건)이다. 한 일당이 망명을 목적으로 중국 국내선 비행기를 납치해 춘천에 착륙했던 사건이다. 그리고 그 비행기에, 조선족이 딱 2명이 타고 있었다. 사건 이후 승객들은 곧 중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보안당국이 나서서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한국에 대한 소문을 절대 내지 말란 것. 1983년 서울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도시였다.
"한국 정부가 동포라고 2,000달러를 줬대요. 처음에는 그 두 분이 거절했답니다. 달러가 뭔지 아예 몰랐기 때문에 무슨 종잇장을 주는 줄 알았대요. 그래도 일단 주는 걸 받았죠. 돌아와 환전하니 그게 집 8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그러니 아무리 입단속을 받았어도 이 사람들이 입이 근질근질하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얘기가 조금씩 조선족 사회에 떠돌았죠."
코리안 드림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커졌다. 1988년에는 TV가 있는 집에 모여 TV 화면에서 헤어진 친척들을 찾아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곤 했다. 올림픽 경기결과 따윈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다. 가장 첫 관심사는 이산가족 찾기. 그런데 처음에는 간첩으로 몰릴까봐 조금 눈치를 봤단다. 그리고 조금씩, 친척을 찾기 시작했다. 기차를 24시간 타고 베이징으로 간 다음,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서 환승해 인천공항으로 들어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친척을 보기 위해선 감수할 수 있었다.
한국의 친척들은 헤어진 지 50여 년 만에 만난 가족에게 돌아가서 잘 살라며 돈을 모아서 줬다. 당시 양국 간에 경제력 차이가 크게 났다. 한국을 방문한 조선족 중 가장 많이 돈을 받은 사람은 2,000만 원을 가져왔다. 그때 조선족 월급이 3만 원 선이었단다. 자연히 이 '친척재테크(?)'가 대박이란 입소문이 조선족 사회에 났다.
"가이드님도 그때 친척한테 돈 좀 받으셨어요?"
"제 할아버지 고향 북한이라니까요."
북한 친척은 간도 친척에게 도리어 돈이나 쌀을 달라고 한단다.



과거 백두산에서 캔 한약재를 한국에 팔았던 것처럼, 지금도 백두산에 온 한국 여행객들을 상대로 백두산에서 캔 장뇌삼과 능이버섯 등을 팔고 있다. 사진 속 능이버섯의 가격은 300위안(약 6만 원).


자식 위해 한국행 택한 조선족 부모들
문제는 문화대혁명 때 족보를 태웠다는 점이다. 그러면 친척 찾기 난이도가 더 높았다. 그러니 친척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한약재다. 반달곰 웅담, 사향노루의 사향, 산삼과 꽃사슴 뿔 등을 갖다가 팔면 몇 십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를 갖다가 양심적으로 판 사람이 있는 반면, 가짜를 판 사람도 있었다. 한국 정부에 적발되자마자 모든 장사에 불똥이 튀었다.
그래서 직접 가서 일하기로 했다. 당시 연변의 삶은 혹독했다. 소수민족이 경제적으로 잘 살면 독립투쟁을 벌일까봐 중국 정부가 투자를 잘 안 해줬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당시 월급이 3~5만 원인데 한국에선 한 달에 100만 원은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딱 3년만 벽돌을 나르고 돌아오면 훨씬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교수도, 의사도 솔깃했다. 외국도 아니고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니 마음의 장벽이 낮았다.
물론 합법적으론 갈 수 없었다. 불법체류다. 밀항선을 타야 했다. 이 비용이 한국 돈 1,000만 원이다.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많았다. 밀항 과정에서 실종된 사람도, 죽은 사람도 많았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간신히 한국에 도착해도 끝이 아니다. 1년을 꼬박 일해야 간신히 빚만 다 갚는 것이었다. 그 전에 불법체류 사실이 발각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조차 없던 시대다. 그러니 몇 년 동안 가족의 얼굴을 전혀 못 보고 연락도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면서 살아야 했다.
한편 연변 내에서는 묘한 기류가 형성됐다. 부모가 한국에서 일하는 집의 아이들은 학용품이나 옷의 때깔이 달랐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위험해도, 아이를 위해선 한국에 가야 했다.
백두산에 중국인이 10배 많아졌다



한때 조선족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했던 연길시의 과거 모습.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때 200만 명까지 늘어났던 연변 조선족 인구는 한국으로 대거 들어오면서 이제 60만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분명해졌다. 일단 단기적으로 돈은 연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특히 가이드들은 한국인을 중국으로 데려와 명산을 여행시키고, 또 반대로 중국인을 한국으로 데려와 한국 제품을 잔뜩 사서 돌아가게 만들며 이중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잃은 것들이 점차 분명해졌다. 먼저 조상들이 일궈낸 땅을 빼앗겼다. 연변 내 조선족 비율은 전성기엔 80%였는데, 지금은 30%에 불과하다. 그 빈자리에 한족이 대거 들어왔다. 소수민족이 독립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인 중국 정부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융화정책 기회가 없었다.
한족이 늘어나면서 기존 조선족학교에 한족 학생들이 더 많아졌다. 원래 한국어를 가르치고, 책도 한국어로 된 것을 썼는데 한족 학생이 더 많다는 명분이 작동했다. 이제 학교에서 한국어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수업은 모두 중국어로 진행한다. 한글로 가득했던 연변 시내 가게들의 간판은 코로나시기에 중국어가 앞이나 위, 한글이 뒤나 아래로 가도록 바뀌었다.



과거에는 가게 간판을 한글로만 써둬도 됐지만, 지금은 중국어가 먼저 오고 그 다음이 한글이다.


백두산도 같은 결의 변화가 일어났다. 15년 전만 해도 백두산 천지에서 들리는 언어는 정확히 한국어 반, 중국어 반이었다. 중국인들한텐 북동쪽 끝까지 와서 볼 만한 산이란 생각이 별로 없었다. 태산, 화산 등 중국오악같이 더 가까이에 충분히 멋지고 중국의 역사와 밀접히 관련된 산들을 더 선호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인 10만 명에 중국인은 100만 명이 방문하는 실정이란다. 지난해 백두산을 장백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지질공원으로 등재한 후 이 지역을 중국화하려는 시도가 맹렬하다. 중국국영방송CCTV 황금시간대에는 수십억의 광고비를 들여서 장백산 광고를 줄기차게 틀고, 포상관광 행선지도 전부 백두산에 좌표를 찍어뒀다. 고속철도도 뚫렸다. 베이징에서 연길까지 기존에 기차로 24시간 걸렸는데 이젠 8시간이면 온다.
2012년에 일본에서 20년 내 백두산이 분화할 확률이 99%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분화하기 전에 한 번 가보자는 유행도 생겼다. 실제로 백두산 온천수의 온도가 과거엔 45℃였는데 지금은 83℃란 조사결과도 한몫 더했다. 그러니 백두산자락에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게 된 것.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
평범한 조선족 가족들의 역사를 따라가 보니 비교적 젊은 조선족 세대가 부모 세대에 비해 중국인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갖는지 납득이 된다. 일단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또 집에서 한韓민족이란 의식을 대물림 받았고, 또 자식에게 해주고 싶었던 부모들은 자녀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한국에서 자식을 위해 일하기 바빴다.
중국도 한중수교 당시의 그 중국이 아니다. 조선족들의 시각에선 오히려 발전가능성은 중국이 더 많아 보이고 한국은 경제발전이 정체된 느낌이다. 굳이 한국을 왕래하며 살지 않고 중국에서 자리만 잘 잡아도 될 것만 같다. 또 사드 사태 이후로 반중정서가 강화되며 조선족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조선족들도 있다. 어떤 이는 중국인과 결혼하지 말고 우리 핏줄을 무조건 지키라는 할머니의 유언이 자꾸 생각나 결국 한민족 여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또 이제 돈을 꽤 벌어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인프라가 좋은 큰 도시에서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도 있으나, 그런 곳에서 자라면 아이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굳이 연길에 남은 사람도 있다. 그나마 연길에선 한국어를 좀 더 편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오려는 조선족들도 있었다.


조선족들은 중국에선 한국인이라고 차별받고, 한국에선 중국인이라고 차별받는다고 말한다. 한중 양국도 조선족에게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택하라고 말한다. 그 격동 속에서 일단은 조용히, 그저 한韓민족으로 사는 것을 택하는 조선족들이 있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