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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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일본에서 온 것으로만 알고, 예전부터 조선에도 많이 있었던 것을 잘 모른다. 물론 근래 각 도시나 철도역 부근 같은 데 새로 옮겨 심은 사쿠라는 일본에서 온 것이 사실이지만 각 지방의 산간 지역에 있는 것은 전부터 내려온 조선의 것이다. 아니, 어떤 일본 식물학자의 기록을 보면 일본의 사쿠라도 조선, 특히 제주지방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사쿠라가 조선에 온 것은 마치 시집갔던 딸이 친정으로 어버이를 뵈러 온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거 조선에서 ‘앵화 대연2구역 (櫻花)’라 하면 앵두꽃이요, 이 사쿠라를 가리킴이 아니다. 사쿠라는 조선말로 벚꽃이다. 그렇다. 당당한 이름이 있지만, 그것도 세력 싸움에 밀려서 김석사와 이서방을 긴타로와 리사마로 부르는 것처럼, 요즘은 일반인들도 ‘사쿠라’로만 부르고 정작 원래 이름은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가난한 놈은 이름도 없다’는 비유를 이 천진난만한 꽃에까지 사용하게 될 줄 u보금자리론 이야 누가 알았으랴.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벚꽃은 조선 각지 어디에나 있지만, 가까이는 우이동 것이 대표적이다. 왜성대의 사쿠라가 아직 콧물을 졸졸 흘리고, 창경원 사쿠라가 펄펄 나는 나비들에게 그 첫 향기를 맛볼 만한 시기에 도달하기 전인,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경성 근처에서 앵화 명소라면 으레 우이동을 첫손가락에 꼽았었다. 동의 이름을 ‘앵운(櫻雲)’ 새마을금고중앙회 직무 이라고까지 바꿔 부르기도 하고, 꽃필 때면 남녀노소가 하루에 무려 수만에 달하고 고급 요릿집이나 술집이 한동안 출장 영업을 하는 까닭에 앵화 나무 한 주에 30, 40원의 판매금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우이동에는 어찌하여 벚나무가 그렇게 많았으며 또 그것은 누가 그렇게 심었을까? 거기에는 상당한 역사가 숨어 있다. 원래 우이동은 선조시대 문장으 우리은행 합병 로 유명하던 동악 이안눌 선생의 소유지로 그의 5대손 이은에까지 전하여 내려오다가, 영조 38년인 1762년에 판서 이계 홍양호의 소유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의 매매 형식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었다. 홍양호의 증조할아버지인 만회가 이동악 선생의 증손 취촌 이집의 장인이 되는 까닭으로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사위인 이 씨의 묏자리로 적당한 땅을 빌어서 대구신용회복위원회 장사를 지내고, 그 묘 아래에 몇 칸의 묘막을 장만하여 묘소를 지키며 보호해왔다. 그러다가 홍양호 때에 이르러서 그의 증조할아버지 묘지가 비록 외손 집안의 토지이기는 하지만, 남의 소유에 있는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하였다. 결국 홍양호의 손자 이은에게 그 토지의 소유권을 넘겨달라 요청하였더니, 이 씨가 흔연히 승낙하고 대가도 받지 않았다. 이를 감사히 여긴 홍 씨는 그 근처 저동에 있는 밤나무밭을 그 대가로 보상해주었다. 그때부터 우이동은 완전히 판서 홍양호 집안의 소유가 되고, 홍 씨는 그 토지를 개척하여 나무도 심고 묘막도 새로 지었다. 동시에 그곳의 자연 경치를 사랑하여 별장을 지어놓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 여유 시간만 생기면 나귀를 타고 항상 놀러 다니며 자호를 ‘이계거사’라 칭하였다. 그러니 ‘이계’는 곧 우이동계를 의미한 것이었다. 이계는 근대 조선에 있어서 문장의 대가일 뿐 아니라 굉장한 행정관료인 까닭에 지방관으로 가면 치수와 식목에 힘을 써서 큰 공적을 세웠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평남 강동의 현감으로 있을 때는 만류제란 제방을 쌓고, 글자 그대로 그 주변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 공덕이 지금까지 민간에 미치고 있다. 홍주목사를 하던 시절에는 충남에 유명한 합덕지를 고쳐 보수하고, 황해도 관찰사일 때는 연안의 남대지를 크게 트고 파내는 공적을 세웠다. 또 경흥부사 때에는 두만강 강변에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는 이 우이동 산지를 개척하고 나무를 심는데 온 힘을 기울였는데, 보통의 다른 사람들처럼 잠시 예쁜 꽃을 즐기고 구경하기 위하여 꽃과 나무를 심지는 않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특히 활을 만드는 데 필요한 벚나무를 심었다. 대개 벚나무는 꽃도 좋지만 과실도 먹고 나무는 활의 재료로 쓰고 나무의 껍질은 활의 집이나, 칼집으로 활용되는 까닭이었다. 지금의 일반 사람들이 홍양호가 나무를 심은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하고, 흰 구름처럼 피어 있는 수만 송이의 흰 꽃의 향기에만 도취하여 그저 술 마시고 춤추고 노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것을 보면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입장에서 선생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이 벚나무를 심은 사람은 홍양호 선생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벚나무의 출처에 대하여는 여러 사람의 말이 서로 달라서, 누구는 재래 조선종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일본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제2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마츠다 코’씨인데, 그가 저술한 ‘일선사화’ 제3편에 발표하기를, 우이동 벚나무는 홍양호가 손수 심은 것으로서 그의 자손의 말에 따르면, 그가 당시 일본통신사로 갔던 조엄과 이인배 등 일행에게 부탁하여 이종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추리적인 오류라고 생각한다. 왜 그러한가? 그때 그들 통신사 일행으로 말하면 영조 39년인 1763년 8월 3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이듬해 1764년 2월 16일에 에도에 도착하고, 3월 11일에 다시 에도를 출발하여 같은 해 7월 8일 서울로 돌아와 임금에게 그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역사기록에 나와 있다. 그러니 에도에서 서울로 오기까지 보통 4개월이 걸리고, 때는 또 묘목이 아주 잘 말라 죽을 여름철이므로 4개월 동안 나무를 잘 보존하기가 사실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때 국법에 사신 일행이 개인의 부탁을 받아서 외국산 물건을 가져오게 허용하지도 않았다. 또 ‘이계집’을 본다면 앞서 말한 강동, 두만강 등에 나무를 심은 사실은 시와 문장으로 기록이 되었으나, 만약 그가 일본에서 나무를 들여와 심었다면 이는 중대하고 특별한 사실임에도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까닭일까? 나는 그 벚나무가 북한산이나 다른 지방에서 재래의 것을 이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니, 현재 북한산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나무가 많고 경기도 쪽 산으로도 가평 화악산이나 강원도 등지의 깊은 산에 또한 그런 벚나무가 많은 까닭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널리 참고하여 추가로 증거를 통해 보완하기로 하고 이만 붓을 내려놓기로 한다.

해설

겨울의 시샘이 여전하다. 4월을 앞두고 내린 눈발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꽃샘추위는 꽃을 이기지 못한다. 길가 여기저기에서 움트는 꽃망울이 위태롭다. 이제 곧 가도의 벚꽃도 그 아름다움을 만폭할 것이다. 한때 우리는 이 벚꽃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시절을 보냈다. 벚꽃은 일본의 것이라는 상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벚꽃에 대해 국화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했다. 1909년 4월 25일 자 ‘경성신보’의 ‘꽃구경의 계절’이라는 기사를 보면 “벚꽃의 번식은 곧 일본인의 번식을 의미한다. 원래 한반도에는 벚나무가 적어 일본인의 증가와 함께 벚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실제 한일병탄 직후 20만 명대로 급격히 늘어난 일본인들이 그들의 삶의 반경에 벚나무를 심으면서 점차 조선에는 벚나무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 조선에서 공무원으로 15년간 일했던 일본인 ‘토요다 테츠키’는 1926년 제국지방행정학회가 펴낸 ‘성무십오년(星霧十五年)’에서 “벚꽃은 일본의 대표 꽃이며, 이는 신주와 무사도를 표상하니 나라의 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에 있는 일본인들의 정착을 위해서는 향수를 누그러뜨리고 조선 땅에 친밀감을 높이는 벚꽃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정치적 관심을 무마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취미, 쾌락, 여가, 오락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한다. 여행, 운동회, 불꽃놀이, 연극과 영화, 동물원, 스포츠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였으며 그중 하나가 벚꽃 놀이였다. 일본은 일찍이 적극적으로 벚나무를 식목했다. ‘경성일보’의 1933년 4월 27일 자 기사인 ‘경성 벚꽃의 내력’을 보면 1907년 남산 왜성대에 500그루를, 1908~9년 창경원에 300그루의 벚나무를 심었음이 확인된다. 차상찬이 언급한 우이동의 벚꽃놀이가 점차 시내에서 더 가까운 왜성대, 창경원으로 옮겨 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창경원은 궁내부 차관으로 있던 ‘고미야 미호마쓰’가 표면상 순종을 위해 창경궁 안에 식물원과 동물원 등을 함께 조성했고, 점차 많은 이들이 벚꽃을 즐기는 대표 장소가 되었다. 이후 창경원은 밤에 즐기는 벚꽃놀이가 유명해지면서 당시 그 명성이 진해의 벚꽃 그 이상이 되었다. 차상찬의 글 ‘우이동의 벚꽃’은 시기상으로 절묘했다. 조선의 상춘 문화가 아니었던 벚꽃놀이가 일반화되고, 한일병탄 초기 벚꽃놀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던 조선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점차 사라지던 때에 경각심을 줬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조성한 벚꽃 명소가 우이동을 대체하던 시기에, 일찍이 조선인에 의해 조성된 우이동 벚꽃의 유래와 가치를 재확인하고 있다. 일본의 국화처럼 여겨지던 ‘사쿠라’가 조선말로 ‘벚꽃’임을 강조하며, ‘가난한 놈은 이름도 없다’는 강한 비유로 우리 것을 우리 말로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벚꽃의 유래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라는 이야기가 상식이 되었다가 최근엔 두 국가의 왕벚나무가 다른 종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하지만 차상찬이 90여 년 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벚꽃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명백한 역사적 근거 없이 우이동의 벚꽃이 일본에서 온 것이라는 일본인 ‘마츠다 코우’의 주장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민족의 자존감을 높이려 에둘러 글을 쓰곤 했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이 확인된다. 확실한 것은 우이동의 벚나무는 조선의 자생종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한 활을 만들기 위해 식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팔만대장경의 절반 이상이 벚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오래전 역사는 물론, 이순신이 활을 만들기 위해 벚나무를 조달하려 애를 쓴 기록까지 이어질 수 있다. 우이동의 벚꽃 유래를 살피는 작은 일이 결코 단순한 날갯짓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왔다. 올해만큼은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벚꽃의 할아버지가 조선이라고 말했던 차상찬의 기개를 떠올려봤으면 한다. 꽃잎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봄이다. △현대어 번역=차상찬기념사업회 △발췌문헌=청오(靑吾) ‘牛耳洞의 櫻花. 櫻花에 한아버지는 朝鮮’. 조선일보 1933년 5월 2일 △해설=이현준 한림대 강사·차상찬기념사업회 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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